[주간경향] 코로나 시대 ‘언택트 연주’ 즐겨봐요

작성일
2020-11-23 22:59
조회
2704
구글 실험실에서 제공하는 원격 비대면 공동 음악 연주 프로그램은 ‘공유 피아노’를 활용한 것이다. 별도의 앱이나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 컴퓨터의 키보드만으로도 가상악기를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구글 실험실의 ‘공유 피아노’를 이용하는 연주자들이 합주를 준비하고 있다. / 구글 실험실

구글 실험실의 ‘공유 피아노’를 이용하는 연주자들이 합주를 준비하고 있다. / 구글 실험실





리더가 밴드 단원들을 합주실로 불렀다. 그런데 악기도 없고 실제로 모이지도 않았다. 이른바 ‘언택트 연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합주가 가능할지 시도해본 실험이었다. 이들은 구글 실험실(Experiments with Google)에서 제공하는 원격 비대면 공동 음악 연주 프로그램인 ‘공유 피아노’를 활용했다. 피아노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피아노만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럼 같은 타악기를 비롯해 현악기와 관악기 등 다양한 음색의 악기를 가상 연주할 수 있다.

직장인 밴드라 합주 시간을 조율하기도 쉽지 않고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 정책 때문에 서로 만나기도 힘들었던 이들은 컴퓨터 키보드를 악기 대신 누르며 가상 합주를 시도해봤다. “기본 비트는 치겠는데 키보드로 필인(Fill in) 넣기가 힘드네.” 드러머인 김현승씨(32)가 말했다. ‘필인’이란 드럼을 연주할 때 마디나 소절이 끝나는 부분, 또는 연주자가 넣고 싶은 지점마다 보다 현란하고 복잡한 연주를 선보이는 것을 뜻한다. 드럼 스틱을 잡고 두드리는 대신 키보드로 박자를 맞춰야 하니 쉽지 않다는 푸념이다. 반면 집에 가지고 있던 신디사이저를 컴퓨터에 연결해 평소처럼 쓰던 악기로 연주할 수 있었던 리더이자 키보디스트 한진영씨(32)는 별 어려움을 못 느낀다. “어차피 진짜 합주를 하려는 게 아니라 감이라도 잡아보려고 했던 거니까.”

음악 동호인들 사이 대안 연주로 인기

공유 피아노 활용법은 쉽다. 한 사람이 방을 열어 접속할 링크 주소를 보내면 함께 연주할 사람이 그 링크를 타고 온라인 합주실에 들어오면 된다. 최대 10명까지 함께 들어올 수 있고, 화면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악기 연주를 통한 음악 교육이나 공동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별도의 앱이나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 컴퓨터의 키보드만으로도 가상악기를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이전부터 이 공유 피아노를 알고 있던 한씨도 본격적으로 써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애초에 컴퓨터로 ‘미디(MIDI)’, 즉 가상악기를 활용한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공유 피아노처럼 초보적인 플랫폼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작·편곡과 연주가 아니라 합주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미디로 작업한 음원을 보내 다른 단원들이 각자 맡은 악기 연주를 녹음하고 덧입힐 수는 있어도 한 자리에서 함께 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씨는 “물론 언택트 합주라면 ‘줌’ 같은 화상회의 플랫폼을 써도 가능하긴 하지만 음질이나 미묘하게 어긋나는 시차 같은 한계가 있어서 공유 피아노가 대안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공유 피아노는 보다 진전된 기술을 언택트 연주에 활용한 사례지만, 사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원격 합주를 시도한 경우는 여럿 있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해 답답해하던 시민들이 다락방 발코니 창문을 열고 기타와 클라리넷 등을 연주하며 시작된 원시적인 원격 합주가 그 시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악기 연주 소리를 듣고 다른 악기를 연주하던 시민들도 창문을 열고 몸을 내밀어 합주에 동참했고, 별다른 악기가 없는 시민들도 노래를 부르며 함께 참여한 것이다.

우연히 만들어진 언택트 합주를 지구 전체로 판을 키워 구체적으로 실현해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레이디 가가와 세계보건기구(WHO)가 함께 기획해 지난 4월 18일 개최한 <원 월드: 투게더 앳 홈> 공연에는 폴 매카트니, 엘튼 존, 셀린 디온 등 세계 유수의 음악인 60여팀이 참여했다. 8시간에 걸쳐 진행된 릴레이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각각의 음악인들이 자신이 있는 공간에서 랜선을 통해 전 세계로 음악을 송출했다. 화려한 무대는 갖춰지지 않았지만 1985년 아프리카 기아 대책을 위해 영국과 미국의 공연장 두 곳에서 도합 17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앞에 두고 이원중계로 펼쳤던 <라이브 에이드>에 비견할 수준의 무대였다.

전주세계소리축제도 비대면 공연으로

<원 월드> 공연이 여러 음악인을 하나의 공연으로 모으기는 했지만 각자의 음악을 순서대로 선보이는 데 그쳤다면 기술적인 한계까지 극복하고 전 세계의 음악인들이 실시간 합주에 도전한 경우도 있다. 지난 9월 16일부터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막공연에서는 ‘온라인 시나위’ 합주를 위해 러시아, 독일, 대만 등 해외 13개국 9개 지역을 실시간으로 연결한 바 있다. 각 지역의 음악인들이 처음에는 각자의 연주를 순서대로 이어가다 공연 막바지에 이르면 다 함께 합주에 참여해 아리랑 연주에 들어간 것이다. 한국 공연장에 있는 특별 시나위팀 오케스트라 피트에 자리 잡은 공연 기술팀까지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랙(지연)’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시도는 전주세계소리축제 역시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전례 없는 전면 비대면 공연으로 진행하기로 결정되면서 대안으로 부상했다. 세계 각지의 음악인들을 한국으로 모았다가 공연 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려면 서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을 제외하고 자가격리에만 꼬박 한 달 가까이를 허비해야 하는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본 셈이다. 언택트 합주가 대안으로 나오긴 했지만 가장 최신의 발전된 통신기술을 활용해 여러 번 반복해도 생기는 지연과 오류 탓에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은 이 시도에 대해 “많은 문화인이 가장 발달한 디지털 기술을 쓸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우리가 가진 문화적 소재들이 다시 문명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도 실험해 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수천㎞가 떨어진 세계 전역에서 실시간 비대면 합주를 시도하는 실험은 아직 상당한 역량을 집중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도전이지만, 국내로만 범위를 좁히면 상용화된 기술이 나왔을 정도로 기술 발전의 속도도 빠르다. 전송속도가 빠른 5G 통신망과 함께 혼합현실(MR) 및 확장현실(XR) 기술을 활용해 서울과 부산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도 3인 이상의 가수와 연주자들이 다양한 공연환경을 배경으로 지연을 최소화한 동시 합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서비스를 개발한 인공지능 음악 기술 전문기업인 이모션웨이브 관계자는 “5만곡 이상의 음악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연주 정보를 인공지능과 결합해 학습시켜 자동연주도 할 수 있고, 음향감을 개선하는 등의 보조적 활용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2011061524321&pt=nv#csidxf4a55642df185b188aca2bf78d2d79donebyone.gif?action_id=f4a55642df185b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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